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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굴(Book review)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읽고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11. 8. 20:55

드래곤 라자
총 8권으로 새롭게 출간된 드래곤 라자

 

한 줄 요약 삶의 보석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단연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드래곤 라자를 꼽을 것이다. 한국 환타지는 딱히 아는 게 없어 거의 외국 쪽으로 읽었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부터 트와일라잇까지 왠만한 환타지는 읽었던 나이지만 드래곤 라자처럼 재미있었던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드래곤 라자는 단순한 환타지 소설이 아니다. 장르 문학 유일의 고등학교 수록 작품으로 소설이 아닌 문학의 반열에 오른 책인 것이다.

 

원서로 읽은 환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책처럼 드래곤 라자 역시 아빠의 추천이다. 조금의 차이라면 드래곤 라자는 추천을 원했다라는 거다. 총 8권이라는 다소 버거운 분량에도 나는 잘 시간을 줄여가며 일주일만에 클리어했다.

 

상당히 흡입력 있는 전개여서 손을 뗄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성격이라 드래곤 라자에 빠져 심지어 꿈도 꿨다.

 

사실 내용을 요약해보면 별 거 없다. 해리포터는 거창하지만 요약해보면 마법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반지의 제왕은 절대 반지를 없애러 가는 여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조앤 롤링이나 J.R.R 톨킨을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는 나의 견해 일 뿐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간단하게 드래곤 라자를 표현해보면 드래곤에게 줄 인질의 몸값을 구하러 가는 일행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식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다른 환타지와 달리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드래곤 라자에 나오는 종족들을 통해, 그리고 주인공들의 말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그 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 보면 좋을 만 한 질문들에 대해 고찰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드래곤 라자를 읽은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분노라는 감정으로 시작된다. 드래곤 라자는 헬턴트 마을에서 주민들이 드래곤 아무르타트에게 느끼는 감정, 분노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목격하고 마을이 몬스터에게 짓밟히는 것의 원인은 아무르타트였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그를 없애기 위해 드래곤 캇셀프라임과 드래곤 라자 디트리히가 왔지만 아무르타트에게 패배, 원정군을 인질삼아 보석을 요구하는 분노의 대상을 위해 후치 네드발, 칼 헬턴트, 샌슨 퍼시발은 보석을 구하기 위해 수도로 떠난다.

 

후치일행이 여정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이는 이루릴이다. 엘프 이루릴, 차갑지는 않지만 한 없이 이성적이며 조화의 신 유피넬의 어린 자식인 인물이다. 사람이 아니기에 인물이라는 단어가 적합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루릴의 등장으로 이영도 작가는 독자에게 첫 번째 메시지를 던진다. 조화와 혼돈에 대해서.

 

 

인간들은 조화를 추구한다. 서로 다르기에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에 혼돈이 일어난다. 이렇게 보면 혼돈이 존재하기에 조화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혼돈 속의 조화라고나 할까?

 

드래곤 라자에서 엘프는 한없이 조화로운 존재다. 별을 보면 별이 되는 존재니까. 호인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다. 너무 조화롭기 때문에 존재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엘프 역시 너무도 조화롭기에 그 조화를 이기지 못하고 세계를 떠나려고 한다.

 

나는 엘프의 경우를 보고 무조건적으로 조화로움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혼란스러워서도 안된다. 우리가 조화와 혼동의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유피넬과 헬카네스를 동시에 모실 수 있는 종족인 것은 아마 인간이라는 종족이 서로 다르고, 미완의 존재이면서도 조화를 지향하기 때문아닐까?

 

 

나는 모양이 서로다른 퍼즐이 맞추어져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 역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조화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루릴을 만난 후의 사건을 꼽자면 셀 수 없이 많지만 특별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대목이 있다. 레너스 시에서 있었던 트롤 습격 사건이다.

 

헬턴트 시에서는 몬스터가 습격하면 건장한 사내들이 여자와 노인, 아이들을 위해 경비대가 오기 까지 시간을 벌고, 경비대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오는 반면, 레너스시에서는 할머니를 밀치면서 도망치고, 경비대는 올 생각을 안 하며 자신들을 위해 트롤과 싸우는 후치 일행을 도와줄 생각는 않고 집에서 구경만 하다가 싸움이 끝나자 집을 나와서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피가 자기 집으로 오지 못하게 뭉개버리는 행동을 한다. 이 상황을 읽은 나의 마음은 후치의 대사로 표현이 가능하다.

 

"가자. 여기 더 있다가는 살인 날 것 같아"

 

한 없이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 대목에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나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레너스시의 시민의 행동에 화가 났다.

 

헬턴트시민의 행동은 현실로 보면 의인이라 할 수 있는 어려운 행동이란 것을 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치는 행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피가 자신의 집에 오지않기를 바라는 행동은 정말 추악했다.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부산행'에서 배우 김의성씨가 연기했던 '용수'역이 아마 적절한 예일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좀비에게 밀어버리는 역할이었으니까. 레너스시에서 일어난 트롤 사건은 1권에서 일어난 헬턴트의 사건과 대비되며 인간의 살고자하는 본능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필멸자가 불멸자를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필멸자일까? 드래곤 로드를 만나는 대목 중 대마법사 핸드레이크가 했던 말이 나온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추억이라는 것이 지인에게 남겨지면서 또 다른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나'라는 존재가 죽는다 해도 남겨진 이들의 마음속에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불멸자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가족이, 친구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세상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지식을, 그리고 추억을 대물림한는 존재,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불멸자다. 육체는 죽었으되 정신은 살아있는 불멸자.

 

 

이것이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이유가 아닐까?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추억이 그 사람의 마음에서 살 수 있으니까. 자신의 목숨보다도 사랑한다는 것은 아마 그 사람과 추억을 쌓아 또 다른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자식을 위한 무조건적인 부모의 사랑도 있지만.

 

드래곤 라자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주변을 변화시키며 살아간다.

 

"앞으로 몇 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완전히 인간의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드래곤 라자가 없으니 드래곤은 우리들의 흐름에서 떨어져 나갔고, 드워프들은 그들의 광산으로 도피한지 이미 오래되었지요."

 

완전한 인간의 세상이라는 건 너무도 슬프다. 서로 화합하지 않은, 인간의 독선적인 세상이 슬프다. 그리고 좀더 확실히 내가 느낀 슬픈 감정의 이유는 이따른 후치의 대사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종족을 인간화시켜 버리고 나서야 우리들은 미래를 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겠지요."

 

미래를 잃은 우리 자신의 모습. 비교할 대상도, 자문을 구할 대상도 없는 우리들만의 세상은 무슨 발전이 있을까. 자연 마저도 훼손하고 있는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만이 남으면 어떻게 될까.

 

 

내 생각에는 이게 후치가 생각한 미래를 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아무것도 없고 인간이라는 존재만 있는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도 사라지고 말 미래.

 

"타이번, 모든 숲을 태워버린 불길은 죽는 법 아닐까요. 우리들의 폭주를 견제하던 엘프라는 언덕도, 드워프라는 바위도, 그리고 드래곤이라는 절벽까지도 모두 파괴되고 나면 우리들, 시무니안의 아들들은 거침없이 달려가겠지요. 마부 없는 마차처럼."

 

모든 숲을 태워버린 불길은 결국에는 죽는다. 불을 끄는 법에는 크게 세가지가 있다. 물로 끄거나 산소를 없애거나...아니면 태울 것을 없애거나.. 엘프도 드워프도 드래곤도 태워버린 인간은 더이상 태울 것이 없어지고 나면 사라지고 말거라는 생각이 담긴 듯 하다.

 

실제로 엘프, 드워프, 드래곤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우리 주변의 흙이 식물이, 동물이 바로 그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후치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을 태워버린 꺼져가는 불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동업자 선생! 당신과 루트에리노 대왕은 인간이라는 초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불길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불길이니까 스스로마저도 태워버리는 초가 되겠지요. 우리가 이룩하는 번영은 목적 잃은 폭주가 되고 말테죠! 그래서 나는 이제 아무르타트를 도피시키겠어요."

 

우리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길. 우리가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우리의 황혼으로 치달으면 석양의 감시자인 아무르타트는 우리에게 변화라는 선물을 줄까?

 

우리는 주변의 것을 변화시키며 살아갈 뿐 스스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헬턴트는 변화하지 않은 것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 변화했다. 우리가 인간으로써의 우리를 태워버리는 날 우리를 변화시키기위한 아무르타트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길시언 바이서스
가장 이상적이었던 인물인 길시언 바이서스. 이미지는 2016년도 모바일 게임버전

 

내가 생각해본 인간상은 길시언 바이서스였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사람. 세월로, 연륜으로, 행동으로가 아닌 그 자체로 위대한 사람.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등을 보이는 사람, 나는 길시언처럼 등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후치의 왕 그리고,나의 왕 길시언처럼 다른 사람은 배려하면서 소탈하고 그러면서도 위대한 그런 사람이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닐까. 이루릴은 너무도 이성적이기 때문에 때로는 감정적이어야 할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음에 들었지만 길시언 바이서스는 나에게 큰 여운을 남기고 깨달음을 남긴 인물이었다.

 

드래곤 라자는 몇 번이고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난 후 읽어보면 또다른 생각이 나타날 수도 있고,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있기에 몇번이고 곱씹어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좋은 이유는 너무 진지하지도 않고 적절한 때의 유머가 섞여 있기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면서도 편하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읽다가도 빵 터질만한 주옥같은 유머들은 드래곤 라자의 가치를 한층 더 높였다. 드래곤 라자는 이때까지 읽었던 책들 중 가장 재미있고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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