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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굴(Book review)

김훈의 '현의 노래' 중 '순장'에 대하여

별이네(byul) 2010. 7. 14. 22:40
한번 장사 때마다 쉰 명 정도의 순장자들이 죽은 왕을 따라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쉰 명 안에는 신하와 백성들의 여러 종자와 구실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문과 무의 중신들이며 농부, 어부, 목수, 대장장이가 구실에 따라 징발되었고, 무사와 선비도 있었으며 늙은 부부, 아이 딸린 젊은 부부에 처녀와 과부도 있었다.

순장자들은 왕보다 먼저 각자의 구덩이 속에 누워 왕의 하관을 맞았다. 늙은 부부가 머리와 다리를 거구로 포개고 한 구덩이 속에 누웠고 젊은 부부는 아이를 사이에 끼고 모로 누워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아낙이 허연 젖을 들어내고 젖꼭지를 물려 우는 아이의 입을 막았다. (이상 18쪽)

돌뚜껑이 덮이는 순간, 뚜껑을 밀치고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자들도 더러는 있었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몽둥이로 사지를 부러뜨려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때로는 장례 전날 밤, 소복을 입은 채 달아난 처녀들도 있었다. 군사들이 갈대숲과 바위 틈을 뒤져 처녀들을 붙잡아 여러 토막으로 베었다. 군사들은 처녀의 몸 토막을 우물에 던지고 흙으로 메웠다. 처녀들의 부모들은 쇠터의 노비로 끌려갔고 살던 집은 헐렸다. 처녀의 도망은 없었던 일로 바뀌었는데,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참람한 일을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이상 21쪽)

 

현의 노래
현의 노래

 

'칼의 노래'로 이름을 알린 작가 김훈의 '현의 노래'를 읽었다. 아는 바와 같이 '칼의 노래'는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이며, 노무현 전대통령이 탄핵기간 중에  읽었던 책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유명작품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의 작품이라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올려 두었다가 마침 기회가 되어 손에 들었다. '칼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책의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이동 중 읽기에 편했다. 책이 좀 두꺼워지더라도 크기가 작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만족스럽다.

357쪽에 달하는 장편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간결하고 등장인물도 단촐한 편이다. '현의 노래'는 가야금의 대가 '우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야, 신라, 백제, 고구려의 얽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가야시대 순장제도에 대한 묘사이다. 사실 책을 덮고 나서도 우륵에 대한 지식의 정도가 매 한가지인 것을 보면, 역시 순장제도에 대한 묘사가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우륵'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나보다. 

무당의 딸이 흑, 하고 울음을 토해냈다. 순장자들이 서로 얼굴을 더듬으며 술렁거렸다. 뒤에서 달려든 군졸이 도끼로 무당 딸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순장자들은 다시 고요해졌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쓰러진 무당의 딸을 구덩이 안으로 밀어넣었다.

순장자들은 무릎으로 기어서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반듯이 누웠다. 젖먹이가 딸린 농사꾼 내외는 마주 보며 누웠다. 젖먹이는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군사들이 밥그릇을 던졌다. 지관이 두 손으로 커다랗게 원을 그려 신호를 보냈다. 구덩이마다 지키고 섰던 군사들이 돌뚜껑을 덮었다. 구덩이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륵은 석실 앞으로 나아갔다. 강건너 쪽에서 번지는 일출의 노을이 가야산 너머까지 뻗었다. 악공들은 석실 앞에서 일렬로 도열했다. 북, 피리, 쇠나팔들이었다. "서두르시오. 일출 전에 끝내야 하오." 지관이 독촉했다. 외곽 쪽 구덩이 속에서 아이 울음이 새어 나왔다. 땅속에서 재갈이 풀린 모양이었다. 구덩이마다 울음소리가 번져나갔다. (123~124쪽)

'현의 노래'에는 여러 쪽에 걸친 '순장'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무서우리만치 섬세하게 설명되어 밤에 읽기엔 다소 부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학창시절 스치듯 지나간 '순장제도'를 눈으로 보는 듯 묘사된 문장으로 접하고 보니 참담하기 그지 없다.

 

 

순장제도란 것이 굳이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대 오리엔탈 문명이 존재했던 지역은 물론이고 멀리 아프리카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던 풍습이라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순장자들의 모습이 상상되어 도무지 내용에 집중할 수가 없었는데, 밝은 날 다시 읽어보니 우륵에 대해서나 삼국의 영토전쟁에서 그다지 재미있는 장면은 없었다. 우륵과 그의 가야금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읽기엔 실망감이 있다.

다만, 일반 대중소설과 달리 섬세한 문장의 터치에서 문학적 향기나 베어있어 작가가 글쓰기에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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