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작가의 두 번째 소설 무옥이를 읽었다. 식민지 말기에서 한국전쟁직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화성, 서울, 부산을 배경으로 주인공 무옥이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을 유난히 좋아하는 무옥이. 어린나이에 시집을 가서 힘든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무옥이다. '책은 힘이 있구나,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기쁘게도, 슬프게도 할 수 있는 게 책이로구나' 무옥이는 책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낀다. 집 나간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무옥이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집에서 나오게 된다. 어릴 적 친구 순자와 방직공장을 다니며 현실을 몸으로 느끼고 노동자의 인권을 주장하다 쓰러지는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무옥이는 세상과 당당히 맞선다. 어..
권무일 저 의녀 김만덕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도 제때 감상문을 올리지 못한 것은 내용 중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계획성 없이 '닥치고 독서'식으로 양을 추구하는 독서생활을 했으나 기왕의 취미생활을 업그레이드 시켜보자는 의미에서 읽은 책들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하기로 한 까닭으로 의녀 김만덕을 어디로 분류해야 할 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한국소설로 분류해두면 쉬운 일이겠으나 이왕 제대로 독서생활로 하기로 하였으니 좀 더 세분화 하고 싶었다. 가족끼리(스텔라식 표현하면 셋이끼리) 의논하여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인물에 관한 책은 전기문학과 전기소설로 분류하기로 하였었다. 그러자면 결국 김만덕을 제대로 알지 않고서는 책의 내용에 ..
모처럼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작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소시민의 입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돈문제에 주변강국에 시달리다 급기야 나라까지 빼앗긴 적이 있는 우리의 역사문제를 잘 버무려 달의 제국이란 이름으로 이야기를 엮었다. 시작부의 다소 건조한 이야기 전개로 인하여 읽는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눈길을 끄는 힘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나 작품속 등장인물 우당의 이완용에 대한 강연내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정도로만 이완용을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에겐 다소 황당함을 줄 것 같다. 어짜피 소설은 허구인지라 작품의 내용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질 바는 아니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완용의 입장을 이해못할 것은 아니겠다라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옳바른 역사관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으로 유명한 황석역 작가의 신작<강남몽>을 읽었다. 야리끼리한 겉표지와 제목이 오해(?)하기 딱 좋게 생겼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산이 있고 강이 있는데 아무래도 어떤 지역의 풍경을 나타내는 듯하다. 확인할 길은 없으나 아마도 개발되기 전의 서울 강남의 모습이 아닐까 추측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강남이기 때문이다. 강남몽은 일제강점기부터 15년 전 어이없이 무너져버린 삼풍백화점 사건때까지의 현대사를 한편의 서사시처럼 엮어 놓았다.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 5장 375쪽으로 이루어진 장편 강남몽은 일반 소설과는 달리 이야기의 전개가 독특하다. 각 장마다 주연이 따로있다. 강남몽의 주인공인 박선녀를 중심으로 그녀의 주변인물들이 각 장의 주연들..
김탁환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다시 읽었다. 이 책에 대한 독서감상문은 이전 블로그에 포스팅 하였지만, 블로그를 단장하며 묵은 글들을 걸러내는 와중에 같이 폐기되어버렸다. 아까뷔~ 하지만 제목처럼 잊혀지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라 다시 읽고 감상문을 새로이 적어본다. 이 작품은 사극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조선 숙종시대 장희빈에 얽힌 내용을 담고 있다. 매설가(소설가) 모독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지은 서포 김만중과 장희빈과 그의 오라비 장희재 등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는 역사 추리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란 제목은 작품속의 주인공 모독이 서포 김만중을 주인공으로하여 '사씨남정기'의 탄생비화를 담아내고 있는 소설의 제목이..
블로그를 열고 서평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꼭 적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적을 수 없었던 책이 박완서님의<나목>이다. 나목은 화가 박수근(1914~1965)을 모델로 한 박완서님의 첫 작품으로, 내가 처음 읽었던 것은 1990년 늦가을 무렵이었다. 문단에 나온지가 올해로 이십년이 된다. 첫 작품이 裸木이었다. 그동안 단행본으로 나왔다가 절판되기도 하고 전집이나 선집에 수록되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손을 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 작품을 읽으면서 엄정한 객관적 시각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20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애착은 편애에 가깝다. 裸木을 생각할 때마다 괜히 애틋해지곤 한다. 가끔 여지껏 쓴 작품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
김진명 작가의 최후의 경전을 읽었다. 코리아닷컴도 읽었으니 이를 포함하면 두 번을 읽은 셈이다. 개정된 최후의 경전에는 코리아닷컴에서 느꼈던 황당함이 많이 사라져있었다. 사실 코리아닷컴은 한참 인터넷이 부글부글 끓어오를때 발표된 작품이라 다소 현실감이 떨어진 면이 없지 않았다. 최후의 경전은 코리아닷컴의 여러 이야기 갈래 중에서 역사적 부분에만 조명을 비추어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최후의 경전은 원작에 비하여 많이 심플해졌다. 화각을 좁혀 집중도를 높인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작보다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작가 특유의 '급 마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쉽다. 유대경전 카발라의 72명의 천사 자바 보로부두르 사원 72개의 불탑 소림사 72가지 무예 앙코르와트의 108개의 ..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이 '몽유도원'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출간하였다. 몽유도원은 예전에 발표하였던 '가즈오의 나라'를 제목만 바꾸어 재출간한 것으로 엄밀히 따지면 새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즈오의 나라는 1995년 발표되어 2003년 개정판이 나왔고, 이번에는 아예 '몽유도원'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한 작품을 몇 번에 걸쳐 우리에게 권하는 것으로 보아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관심을 짐작하게 한다. 가즈오의 나라를 읽은지 몇 년이 흐른 터라 새로운 책을 대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김진명 작가 특유의 속도감으로 인하여 1, 2 두 권을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역시 무슨 책이든지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야 읽히는 힘이 있어 지루하지 않다. 김진명 작가의 작품들은 항상 급마무리..
하병무의 장편소설 '신비'를 읽었다. 덕분에 무더운 이틀밤을 행복하게 보냈다. 단순히 소설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터라 행복이 두배였다. 소설.. 특히 역사소설의 경우 개연성이 첨가된다면 아무래도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그런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39세에 사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잠적하였다'는 가설에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첨가하여 '신비'를 완성하였다. 고정욱의 '원균 그리고 원균'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숨겼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소설중엔 이처럼 기존 역사에 의문을 담은 책들이 제법있다. 이 모두가 중국사서를 베껴만든 김부식의 '삼국사기' 영향일테지만, 삼국사기를 제외하곤 딱..
한번 장사 때마다 쉰 명 정도의 순장자들이 죽은 왕을 따라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쉰 명 안에는 신하와 백성들의 여러 종자와 구실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문과 무의 중신들이며 농부, 어부, 목수, 대장장이가 구실에 따라 징발되었고, 무사와 선비도 있었으며 늙은 부부, 아이 딸린 젊은 부부에 처녀와 과부도 있었다. 순장자들은 왕보다 먼저 각자의 구덩이 속에 누워 왕의 하관을 맞았다. 늙은 부부가 머리와 다리를 거구로 포개고 한 구덩이 속에 누웠고 젊은 부부는 아이를 사이에 끼고 모로 누워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아낙이 허연 젖을 들어내고 젖꼭지를 물려 우는 아이의 입을 막았다. (이상 18쪽) 돌뚜껑이 덮이는 순간, 뚜껑을 밀치고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자들도 더러는 있었다. 군사들이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