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만난 할아버지 본문

블로거노트(Non category)

산에서 만난 할아버지

별이네(byul) 2010. 1. 24. 20:11

공자는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즐긴다(知者樂水)"라고 했다. 아무래도 나는 어진 심성을 가지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산 보다는 물을 좋아하는 편이니까. 그러나 간혹 혼자 또는 작은 무리를 지어 산을 찾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자발적으로 산을 찾을 때는 틀림없이 머리속이 복잡할 때이다. 컴퓨터 조각모음 하는 기분으로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머리속이 깨끗하게 비워지는데 그 느낌이 좋다.

오늘도 조각모음을 위해 혼자 산을 찾았다. 봄은 아직 멀리 있을텐데 벌써 계절의 변화가 저만치 부터 느껴지는 듯 하다. 산을 오르기전 어둡고 답답했던 생각들은 산에 맡겨두고 대신 한껏 좋은 기운을 받아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렇게 내려오는 길에, 집게를 들고 다른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가며 내려가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쓰레기가 들어있는 까만 비닐봉지를 허리에 묶어 차고 계신 할아버지는 칠순 가량 되어 보였다.

 

할아버지가 나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은 허리에 찬 까만 '비닐봉지' 때문도 아니고, 다른 등산객이 흘린 쓰레기를 줍는 '봉사'도 아닌,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노래 때문이었다. 구수한 음성으로 부르고 있는 노래. 가사가 의미심장해 속도를 조절하여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년도 힘든것을 천년을 살것 처럼
살다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것들이 모두 부질 없다는 것을

눈이 마주치자 백발의 할아버지는 맘 좋은 미소를 보내주셨다. "노래 가사가 참 좋습니다" 했더니 할아버지는 인생의 의미가 있는 노래라며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 주셨다.

할아버지는 오랜 외국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 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이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중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산을 내려왔다. 할아버지는 병으로 인하여 인생을 달관하셨나 보다.

그동안 산에 갔다오면 머리속에 가득찬 것들을 비우고 온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반대로 커다란 뭔가를 채우고 온 느낌이다.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뭘더

최근에 올라온 글

TAG

more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