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생활을 하다보면 손이 쉽게 가는 책과 희얀하리만치 손이 가지 않는 책이 있다. 이번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이 손이 가지 않는 책중의 하나였다. 댄 브라운의 신작이 나온 사실을 서점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별다른 이유도 없는데도 선듯 집어들지를 못했다. 사실 평소대로라면 다빈치 코드로 쌓은 댄 브라운의 이름만으로도 구입에 망설일 이유가 없는 책이었다. 그러다가 마침 자주가는 도서관에 책이 꽂혀 있길래 빌려 보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노래말 처럼 슬프기 그지없었다. 재미 없어서. 댄 브라운류의 책은 한번 잡으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 있어야 정상이다. 그의 전작인 '다빈치 코드'가 그랬고 '천사와 악마'가 그랬었다. 굳이 댄 브라운이 아니더라도 몇몇 인기작가들의 책은 그..
나는 차를 세우고 내려 조금 걸었다. 거리는 말랑말랑한 촉감의 물질로 포장되어 있었다.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신비한 소재였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온천수처럼 뜨거운 비였다. 나는 근처의빨간 공중전화 부스로 일단 몸을 피했다. 대찬 소나기였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 서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고 있을 때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비를 맞으며 잰걸음으로 다가 왔고 그는 서슴없이 내가 있는 부스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남자도 비를 피하려 한다고 생각하며 조금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런데 그는 다짜고짜 주머니에서 뾰족하고 번뜩이는 칼을 꺼냈다. 주방용 식칼 정도 되는왕성한 크기였다. 제기랄, 강도인가? 나는 강도를 만났을 때의 기본 매뉴얼처럼 번쩍 손을 들었다. 좁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선 피할 ..
엘리자베스 레어드의 한 뙈기의 땅(A Little Piece of Ground)를 읽었다. 중고서점 한쪽 구석에 박혀 있는 것을 제목에 끌려 고른 것이었다. '안네의 일기'가 나찌에 의해 탄압을 받은 유태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작품은 유태인때문에 고통을 받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는 원래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땅임을 주장하며 강제로 점거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공인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라말라 지역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곳으로 테러사건이 빈번하고 그에 따른 보복공격으로 한시라도 마음놓고 살 수 없는 곳이다. 이 작품은 이곳 팔레스타인 라말라에..
레너드 위벌리의 를 읽었다. 이 책은 그랜드 펜윅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후속작 도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나의 경우 월스트리트 공략기를 먼저 읽고 뉴욕침공기를 읽은 셈인데, 내용의 연결성으로 봐서 발표된 순서대로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소설은 풍자가 있는 코미디물이다. 즉, 웃기고 재미있으면서도 우리에게 뭔가 생각할 꺼리를 제공한다. 그랜드 펜윅은 저자 레너드 위벌리가 북부 알프스의 험준한 습곡에 만든 가상국가로 길이 8킬로미터, 폭이 5킬로미터 정도의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산악국가이다. 인구가 4,000여 명에서 6,000명에 이를 정도로 늘어나 자급자족이 힘들어지면서 평화롭던 그랜드 펜윅에 위기가 닥친다. 건국이래 600년 만에 처음으로 수출을 늘려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을 ..
하퍼 리의 를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나 다시 읽을 때나 이 작품은 언제나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저자 '하퍼 리'는 유일한 이 하나의 작품으로 1961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엘라배마 도서관협회상과 국제 기독교도 및 유대인 연맹조합상, 1962년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상을 수상했다. (표지에서 인용) 작품속의 배경이 미국 남부 앨라베마 주의 메이컴이라는 조그만 마을인데, 저자 역시 앨라베마 먼로빌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이 소설이 그의 자전적 소설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이 책은 진 루이스 핀치(스카웃)라는 여성의 어린시절 회고담이다. 변호사인 아빠 애티커스 핀치, 오빠 젬, 삼촌 존 헤일 핀치(잭), 고모 알렉산드라, 요리사 아줌마 칼퍼니아 등이 그의 가족 구성원이고, 그외 누명을 쓴..
을 지었던 정은궐 작가의 을 읽었다. 앞선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가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1, 2 두권 읽는데 소비하였다. 한때 TV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된 4명을 F4라는 말로 묶어 칭했던 것처럼 에도 F4와 같은 주인공 '잘금4인방'이 등장한다. 이들 F4는 에 등장했던 그들이다. 그러니까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후속작이 되는셈이다. 요즘 이야기로 시즌2 라고 할 수 있겠다. 물건(?)이 좋다하여 '대물'로 불리는 남장한 낭자 김윤희와 일등 신랑감이라는 뜻의 '가랑'으로 불리는 이선준, 허구헌날 싸움박질을 하고다녀 미친말이란 뜻의 '걸오'로 불리는 문재신, 여자의 치맛폭에서 헤어나오기 싫어 호를 계집녀에 수풀림 '여림'으로 지은 구용하. 이들 4인..
예전에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재미없는 책은 보지 않는다. 때문에 나에게 재미와 더불어 배움이나 느낌이 남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책으로 취급받는다. 그러한 나의 독서성향에 비추어보면 이 책은 그런 나의 취향에 가장 가까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승부는 바둑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기보가 없다. 그래서 더 쉽게 읽혀진다. '승부'는 아버지와 아들이 이대(二代)에 걸쳐 목숨 걸고 펼친 승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세래의 '승부'는 책 전체가 한자락 바람 같다. 머물면 흩어지고 소멸하는 바람의 본질 그 자체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차치하고라도 비극이 미학을 절묘하게 조율해 내는 그의 언어들은 이 암울한 시대에 한줄기 소망과 슬픔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 김성동(소설가) 소설 '승부'는 암울한 시대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신을 읽었다. 나는 신간은 가급적 블로그에 올리지 않는다. 오래된 책 중에서 아직 소개못한 것들이 많아서 그렇지만, 광고성 리뷰글들이 난무하는 블로그들에 대한 좋지않은 감정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비교적 최근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신을 언급하는 것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믿음때문에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실수를 다른 사람들은 범하기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읽어 보고 좋은 책이다 싶으면 권하고, 그렇지 않으면 권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굳이 포스팅까지 하는것은 나의 스타일이 아니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한 독자의 입장에서 실망감이 컸던 탓일거다. 신은 예전의 타나토노트 등과 살짝 연결된(홍보를 위한 것이겠지만) 내용을 담고 있는데, 다분히 한국독자를 의식한 작품이기도..
요즘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마음이 들면 몸은 못가더라도 마음이라도 보내자 싶어 여행관련 책자를 뒤적인다. 잠시 차한잔을 마시며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집어 들었다. 알다시피 류시화님은 인도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느꼈던 것들을 '글'로써 발표하는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도 그런 류의 책이다. 책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여행자를 위한 서시'를 음미해보고 싶어서 집어들었는데, 마침 다른 부분이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 든다. 류시화님이 인도 여행중에 열이틀 동안 스승으로 모신 인도의 요기 싯다 바바 하리 옴 니티야난다로부터 전수받은 세가지 만트라이다. 이 세가지만 기억..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를 읽었다. 분서갱유를 당했던 이문열 작가가 오래도록 별러 출간한 책이라 사뭇 그 내용에 호기심이 생겼다. 소설가가 소설을 써놓고 제발 소설은 소설로 읽어 달라고 간청해야 하는 고약한 시대가 되었다. 소설이 현실 정치를 발언해서는 안된다는 것, 아니 소설에 작가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이 희얀한 소설론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거기다가 더욱 알 수 없는 일은 소설에 현실 정치의 문제를 수용하는 일을 무슨 괴변이라도 되는 양 핏대를 세우는 이들일수록 지난 시대 그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소설은 어김없이 정치적이었다는 점이다.… 책머리에 나오는 작가의 말인데 시작부터 그 내용이 심각하다. 대충 어떤 주제의 책인지 감은 잡혔다. 내용상 분명 날 선 비판이 예..